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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가 말하는 행복의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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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어야 산다 2017. 3. 2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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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행복한 삶은 내 안에 있다

19855, 우리 교회는 네덜란드 해방 40주년 기념 예배를 주관하게 되었다. 네덜란드 영사관의 요청으로 열게 된 그 일요 예배는 나에게 매우 감격스런 일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현수막을 달아 주었고 성가대는 축가를 불러 주었다. 그 자리에는 많은 고위층 인사들이 참석했을 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는 점령당한 네덜란드에 식량을 공수해 주었던 미국인 조종사들과 그것을 받아 생활했던 네덜란드 농부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자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포옹하는 광경은 내 기억 속에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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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끝난 후 축하 오찬이 열렸다. 그때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그들 중에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인상에 남았다. 그는 매우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점잖고, 품위 있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진 주름에서 고된 인생의 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대화가 무르익자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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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였을 때 그는 독일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 가스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는 순간 그것이 자기 가족의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혼자 살아 남았고 전쟁이 끝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입고 있는 옷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때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는 당시가 자기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때의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고, 후회와 증오로 가득 찬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난 행복해지기로 했죠. 하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단 하루도, 그 당시 4년간의 악몽과 끔찍한 기억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왔고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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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가 삶의 부정적인 면은 완전히 도외시한 채 가식적으로 긍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는 팔리애너(pollyanna : 맹목적인 낙천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긍정적인 삶을 선택한 현실주의자며,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존경해야 할 부분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절망적인 인생을 살 수도, 희망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인생의 암흑기에 이미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마음가짐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 선택권 또한 자신한테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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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주어진 여건에 상관없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알아야 할 첫 번째이자 가장 심오한 삶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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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서 의지를 끌어내라

지금 해야 할 일만 생각하라

내게 닥친 일이나 문제로 인해 무력감이 느껴질 때면 나는 세계적인 의학계의 거장 윌리엄 오슬러의 말을 떠올린다. 1909년 예일대학교에서 있었던 삶의 방식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오직 그 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라.” 다른 걱정거리는 모두 닫아 버리고 오직 그 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한다면 정신적 고통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없이 하루 일과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는 의미다. 그의 말은 미래에 대한 근심을 떨쳐 버리고 그 날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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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방문한 한 관광객이 성당 안 넓은 벽에 모자이크 작업을 하고 있던 예술가에게 물었다. “벽이 이렇게 넓은데 언제 다 완성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예술가는 하루하루 꾸준히 하면 됩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 날 완성할 수 있는 부분까지 선을 그어 표시하고 그 외의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하루의 작업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모자이크는 완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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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들도 넓은 벽과 같다. 우리는 완성해야 할 넓은 벽을 바라보며 걱정할 수도 있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훌륭하고 독특한 내용으로 채워 나갈 수도 있다. 인생도 그와 마찬가지다. 그날그날 주어진 일만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면 걱정거리는 한결 줄어들 것이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요?”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지금 당장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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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이 인생을 바꾼다

공감대를 형성하라

몇 년 전 비서가 회의 중인 나를 불렀다. 잔뜩 화가 난 남자가 교회 로비에서 목사인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회의가 끝나는 대로 내려갈게요. 만약 정말 심각한 일이라고 하면 다시 불러 줘요.”하고 말했다. 나는 비서가 다시 나를 부르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회의가 끝난 뒤에도 부르러 오지 않아 나는 다른 일을 계속 했다. 1시간 정도 지나자 비서가 돌아왔다. 나는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안정을 되찾았어요. 이제 목사님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대요.” 비서가 화가 난 남자를 안정시킨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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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를 만나 보기로 결심했어요. 로비로 내려가면서 내 자신에게 침착하자고 수없이 되뇌었어요. 저는 그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는 정말 흥분할 대로 흥분해 있었지요. 저는 그 남자 옆에 가만히 앉아서 가능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단지 그의 심정을 함께 느껴 보려고 했어요.” 그의 침묵은 남자로 하여금 조금씩 안정을 되찾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비서는 그를 위로하거나, 해명하는 말을 많이 하거나, 그에게 화가 난 이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도 남자를 진정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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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친절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의 말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물론 어느 한순간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특히 상대방이 고통받고 있거나, 무조건 싸우려고 하거나,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할 때는 더욱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 그저 단순히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놀랄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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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의 고요함을 끌어내라

잠자는 창의력을 깨우라

단지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직면한 적이 있는가? 무언가 이전에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새로운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는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고 자신이 무력하게만 느껴질 때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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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은 단지 예술가나 작가 혹은 천재들에게만 국한된 단어가 아니다. 누구나 창의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달려온 아이에게 적당한 대답을 해 주거나 직장에서 팀을 격려해야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살아가다 보면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문제들과 수없이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그때마다 당신의 창의력을 맘껏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간단하지만 효과가 뛰어난 나만의 비법을 알려 주려고 한다. 그 방법은 다름 아닌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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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그 창의력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다. 나는 매주 예배를 위해 설교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이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몇 년 동안 나는 설교 문안을 작성하면서 많이 좌절했고 내 자신을 책망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그 일은 내게 있어 정말 고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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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글자라도 빨리 써야 하는 상황에 닥쳤는데도 한참 동안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설교 문안을 작성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글을 쓰다가 멈추기 일쑤였다. 커피를 마시고 전화를 하고 집안일을 하거나 심지어 산책을 나가고는 했다. 이런 나의 모습에서 글 쓰는 일을 외면한 채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토록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까? 왜 오래도록 조용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없는 것일까? 왜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마음만 심란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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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 알 수 있었다. 나는 일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빈둥대는 것이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잠시 손을 놓고 잠자는 창의력을 깨우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뒤부터 나는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추고 머리를 식히며 긴장을 풀려고 노력한다. 잠시 쉬고 나면 새로운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글을 계속 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쓴 글 중에서 논리에 맞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 고치기도 한다.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조용한 곳에서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음악을 틀어 놓거나 텔레비전, 라디오 등이 켜져 있으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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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이 어려워 보이는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는 잠시 침묵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라. 당신의 창의력은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분위기 때문에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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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은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

비극도 삶의 한 부분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비극적이었던 상황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인생에 뿌려 놓은 앙금을 없애는 작업을 시작해 보자. 살아오면서 비극적인 일을 전혀 겪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비극의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비극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 때문에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비극은 살아가면서 예측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다. 또한 비극은 당신이 고립되거나 고통을 당한다는 뜻도 아니다.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부모로부터, 정해진 장소에 태어난다. 비극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한 젊은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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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한 살이 되기 전까지 내가 아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가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에도 내내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마지막 키스를 나눴고 대기실에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나는 이 끔찍한 일들이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안 어디에선가 이런 말이 들려 왔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삶의 일부분이야.’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모든 상황을 차분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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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피할 틈을 주지 않고 찾아오는 인생의 수많은 경험 중 하나다. 그런데 한 번의 비극적인 일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와 반대로 비극을 맞이했을 때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다시 힘을 얻고 나쁜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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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을 경험하고 나서 한층 성숙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내게 폴라라는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는 유능한 작가이자 연설가이고 감당할 수 없을 만한 불운을 겪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상담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도 교통사고로 남편과 세 살된 딸을 잃은 경험이 있다. 그런 비극적인 일을 당하고 나서 폴라는 종교를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다. 만약 그가 그런 비극적인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렇게 묻자 폴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마 못 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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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비극을 겪지 않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극은 우리의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과 긍정적인 영향을 동시에 미친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느냐에 따라서 인생을 더 알차고, 강하고,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고 자기 자신을 건강한 영혼을 지닌 강한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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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쓴 편지다. 사도 바울의 인생은 고된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굳은 신앙심으로 항상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는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불행이나 손실, 나아가 비극도 언젠가는 을 이룰 것이라고 믿었다.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하는 것은 비극을 이겨내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희망이라는 말이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희망은 인생의 깊은 수렁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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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좋은 곳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유대교인들과 크리스천들이 갖고 있는 신앙 메시지의 전부다. 유대인들은 오랜 옛날 애굽의 노예로 살면서 불행한 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구원받았다. 성서의 가장 큰 비극인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것도 결국에는 놀라운 은총의 역사(役事). 어둠의 동굴을 통과하면 빛이 보이는 것처럼 비극을 이겨내면 기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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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비극을 겪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희망의 빛이 보이는 길로 걸어갈 것인지 어두운 절망의 수렁에 빠질지는 당신이 결정할 문제다. 어렵겠지만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비극은 더 강하고 알찬 인생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당신은 희생자가 아닌 승리자의 운명을 선택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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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멀리하라

편견에 예외를 두지 말라

내가 정면으로 맞서고 싶은 편견이 하나 있다. 이것은 전 세계에서 지금 이 순간도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편견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 성향으로 인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증오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며 심지어 때리거나 죽이기까지 한다. “나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아. 하지만 동성연애자들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냐?”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행동을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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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간 나는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편견을 감춰 왔다. 나는 그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들이 처한 사회적인 상황을 특별히 주시한 적도 없었다. 나는 동성연애자들이 도덕적인 선택권이 있는데도 어리석고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겉으로는 친절하게 그들을 대했고 친한 척 행동했지만 사실 거리를 두고 있었고, 특히 지금 후회되는 것은 그들을 조롱하는 유머를 거리낌없이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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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나 잘못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들에 대한 편견을 없앨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평소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목회일을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던 한 사람이 자기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 때부터 나의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고상한 심성과 영성을 지녔고, 책임감이 강하며, 내가 무척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해 봤지만 좀처럼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은 고통과 고립, 두려움, 절망, 그리고 외로움이란 단어로 짜여진 천 조각 같아요.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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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동성연애자들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짧은 이야기는 나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그는 동성연애자였다. 내가 이탈리아계 백인, 그리고 이성애자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키가 크고, 머리색이 빨갛고, 음악적인 재능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소질을 갖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 우리가 그런 유전자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동성애 역시 개인적인 선택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동성연애자들을 거부하고 그들을 마치 천민처럼 대하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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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이상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다. 예수는 모든 여인을 자매로서 사랑하는, 또 모든 남성을 형제로서 사랑하는, 위대한 사랑을 지닌 분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당하게 억압받고 버림받은 이들을 사랑하셨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당신의 머리와 마음 속에 감춰진 편견에 과감히 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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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견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지 않아. 그렇지만 예외는 있어.” 당신은 이런 말로 생각을 나누어 놓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이 예외라는 단어는 언제든지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예수의 아낌없는 위대한 사랑으로 충만해야 하며, 여기에 예외란 없다. 모든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의 식탁에 초대받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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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밝은 미래를 위해 위험과 맞서라

위험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라

대부분의 종교 관련 책에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위험에 관한 우화와 교훈이 담겨 있다. 물론 성서에도 그런 우화가 많이 나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베데스다에 있는 작은 연못에 관한 이야기다(이 연못은 실제로 존재했다고 한다. 최근 예루살렘에서 연못터가 발견되어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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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전에는 천사들이 연못의 물을 움직인다고 믿었다. 천사들이 연못의 물에 치유력을 불어넣으면 물이 흔들리는데 그때 처음 뛰어드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이 흔들리면 맨 먼저 뛰어들기 위해 연못가에 앉아서 기다렸다고 한다. 어느 날 베데스다 연못을 지나가던 예수는 38년 동안 그 연못가에 누워 있던 병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예수가 그에게 왜 여태껏 물 속에 들어가지 못했느냐고 묻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아무도 나를 물 속에 넣어 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 주지 않았어요.” 예수는 더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병이 낫기를 바라느냐?”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일어나 걸었다. 비록 예수의 말을 따른 것이지만 그가 스스로 결심했기 때문에 걷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남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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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이 일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르라는 것이다. 병이 치유되거나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당신은 앉거나 누워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물론 38년이라는 긴 시간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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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첫 번째 단계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런 문구가 생각난다. “어서 들어와. 물이 아주 좋아.”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뛰어들라. 처음에는 물의 온도가 알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온도에 익숙해질 거이다. 아니, 어쩌면 당신 몸에 딱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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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힘과 당신을 연결하라

함께 시간을 보내라

다른 사람과 함께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어떤 문제에 대해 누군가와 함께 심사숙고해 본 적이 있는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문제에 집중하고, 기도하는 것은 놀라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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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여성으로부터 수년 동안 어려움과 마찰을 겪어오던 결혼생활이 어느 날 기적적으로 변화하게 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뭔가 색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죠. 상담치료를 받을 때처럼 문제를 지적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분간 사태가 나아지길 바라면서 각자 기도와 명상을 했어요. 몇 달 동안 매일 그런 시간을 가졌죠. 그러자 우리 부부 사이에 놓여 있던 장벽과 엉킨 증오심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거예요. 조용히 기도와 명상을 하고 나면 우리는 더욱 효과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우리들의 대화가 불협화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조용한 울림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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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조용한 시간을 함께 나누면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좀더 비슷한 심정과 감정으로 문제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명상을 통해 더 높은 존재의 도움을 받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력을 하는 데도 일이 잘 안 풀릴 때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언제나 지나치게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은 자신이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잊도록 만들어 버리고는 한다. 함께 기도하거나 명상의 시간을 나누는 것은 그런 나쁜 습관을 깨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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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단련하라

당신이 선택한 일에 열정을 쏟으라

유명한 테너 가수인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빵을 굽는 사람이었다. 아들이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아들에게 성악 수업을 받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어린 루치아노는 교사가 되고 싶었기에 결국 교육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루치아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인생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아버지는 이런 충고를 했다. “루치아노, 네가 두 개의 의자에 앉으려 한다면 분명 의자 사이로 떨어질 거다. 항상 하나의 의자에 앉도록 해라.” 그리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파바로티는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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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수년 동안 고통과 좌절과 불만족을 경험한 뒤에야 그는 성악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수년이 지난 후에야 메트로폴리탄에서 오페라 <라 보엠>의 주인공 로돌포 역을 맡을 수 있었다. 파바로티는 아버지의 충고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이 되었다고 얘기한다. 마찬가지로 당신 벽돌공이든, 기술공이든, 사업가든 어느 일에 종사하든 간에 흥미를 끄는 그 일에 집중하면 목표가 선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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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일에 흥미를 가져라. 그리고 당신의 모든 애정과 열정을 당신 선택한 일에 쏟으라. 당신의 전부를 투자하라. 어떤 경우에도 열정을 버리지 말라. 삶이 당신을 시험할 때, 인생이 당신을 괴롭힐 때도 견뎌내라. 결코 당신의 열정을 버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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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은 자신이 이끌어야 한다

자신만의 존재가 되라

지구상에 살고 있는 50억의 사람들 중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매우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태초부터 이 세상에 살았던 수억 이상의 사람들 역시 서로 다른 모습을 한 특별한 존재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특별한 존재다. 특별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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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여행하던 어느 날 나는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녔다. 스웨덴은 유리 공예가 유명하므로 나는 유리로 만들어진 물건을 사기 위해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예쁜 꽃병을 하나 발견했다. 정교한 선으로 꽃병 전체에 띠가 둘러진 진한 푸른빛이 나는 유리 꽃병이었다. 나는 꽃병을 들고 직원에게로 가서 이걸로 주세요.”하고 말했다. 그 직원은 유리 꽃병을 거꾸로 들어서 밑바닥에 새겨진 장인의 이름을 보여 주며 그것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임을 증명해 주었다. 그 순간 유리 꽃병은 내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것과 똑같은 꽃병은 내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무리 수많은 곳을 여행할지라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그것은 유일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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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일한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 따라야 할 몇 개의 단계들과 피해야 할 함정이 있다. 먼저 피해야 할 함정에 대해 살펴보자. 이 함정들은 자신이 아닌 것을 자신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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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가장 위험한 함정은 당신의 소유물을 지나치게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동차와 같은 물건을 통해 특권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과 동일시하는 또 다른 소유물은 바로 살고 있는 장소. 우리는 좋은장소에서 살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멋지더라.’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장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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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야 할 때 자신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주로 직업을 말한다. 직업이란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업과 자신을 지나치게 동일시한다면 갑자기 직업을 잃어버리거나 은퇴하게 되면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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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을 방해하는 함정은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자신이 닮고 싶은 영웅의 모습을 마음 속에 지니고서 그가 얼마나 성공을 했는지, 얼마나 훌륭한지 살펴보고 이렇게 말한다. “난 꼭 저 사람처럼 되겠어.” 하지만 그것은 모방과 다를 바가 없다. 진정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한다면 훌륭한 인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려고는 해도 그 사람과 똑같이 되는 것을 바라지 말라. 당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자기 자신일 뿐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면 언젠가는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들의 경지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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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유일한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그 무엇과 손을 잡아라. 그것은 감정 이상의 것이며, 마음 깊숙한 곳에 깔려 있는 정신의 목마름, 소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껏 당신과 함께 살아온 심오한 목마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목마름은 당신에게 어린이들이나 약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소명에 따라 사는 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많은 직업이 소명에 부합될 수 있다. 소명과 목마름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인생은 그 어떤 명망 있는 직업이나 소유물보다도 값진 보상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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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자신만의 유일한 사람이 되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높은 존재와 손잡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라. 나는 사람이 이런 영적 교감 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지만 물 밖에서는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진리의, 영의 세계 밖으로 나온 인간은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인간이지만 창조적이고 영적인 힘과 연결되지 않으면 인간 그 자체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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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앞의 두 단계를 거치면 온전히 자신일 수 있는 길에 들어서게 되고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빛날 때 당신은 다른 유일무이한 존재들과 더불어 세상에 훌륭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YvNT8uTAf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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